10월 말 바이낸스에서 60억 달러가 넘는 가상자산이 빠져나간 사건의 배후로 FBI가 북한 해킹조직을 지목했는데, 이들의 핵심 무기는 코드가 아니라 가짜 채용 제안 같은 사회공학이다. AI로 만든 완벽한 문장과 실시간 딥페이크 영상이 더해지면서, 어색한 번역체로 피싱을 알아보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AI 탐지 도구는 의심 메시지를 걸러내는 보조 수단일 뿐 짧은 문자나 음성·영상 사기에는 한계가 있어, 결국 별도 경로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마지막 방어선이다.

2026년 10월 29일,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의 핫월렛에서 비트코인 1만8270개를 포함해 약 63억 달러어치의 자산이 빠져나갔다. 공격자들은 자금을 11차례로 나눠 20분 남짓한 시간에 옮겼고, 이 가운데 24억 달러는 동결이 불가능한 형태로 재빨리 전환했다. FBI는 10월 31일 배후로 북한 해킹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TraderTraitor)’를 공식 지목했다. 이 조직은 흔히 ‘라자루스’로 통칭되는 북한 국가 해킹 세력의 한 갈래로 분류된다. FBI는 같은 조직을 2025년 2월 바이비트 거래소에서 약 15억 달러를 탈취한 사건과도 연결 지었다.
바이낸스는 손실의 약 95%를 자체 자금으로 메웠고 고객에게 떠넘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 이용자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이들이 거래소의 금고를 어떻게 여느냐다.

KATRIN BOLOVTSOVA
거래소 시스템을 정면으로 뚫는 일은 드물다. 북한 연계 조직이 오래 써 온 방식은 내부 직원이나 개발자를 속여 스스로 문을 열게 만드는 사회공학이다. 대표적인 것이 ‘드림 잡(Dream Job)’ 작전이다. 링크트인이나 이메일로 그럴듯한 리크루터를 가장해 파격적인 조건의 채용 제안을 건네고, 입사 과제나 채용 안내서 파일에 악성코드를 숨긴다. 가짜 면접 사이트로 유도해 악성 프로그램을 깔게 하는 수법도 보고됐다. 이들은 실존하는 방산·IT 기업의 이름을 도용하기도 한다.
일반 이용자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가상자산 투자 안내, 에어드랍, 거래소 보안 경고를 가장한 메시지가 모두 이 사회공학의 소매 버전이다.
예전에는 가짜 메시지를 알아보는 손쉬운 단서가 있었다. 번역기를 돌린 듯한 어색한 문장, 띄어쓰기 오류, 조잡한 로고 같은 것이다. 생성형 AI는 바로 이 단서를 지웠다.
2026년 7월 미국 등 11개국이 함께 낸 합동 경보는, 북한 공작원들이 실시간 AI 딥페이크 영상으로 화상 면접을 통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방식으로 약 8억 달러가 북한 무기 프로그램으로 흘러갔다는 분석이 함께 나왔다. 가짜 이력서와 면접 중 실시간 답변까지 AI로 만들고, 심지어 피싱 미끼의 신뢰도를 높이려 신분증을 위조하는 데도 AI가 쓰였다. 메시지만 보면 문법이 완벽하고, 영상 속 상대는 멀쩡히 말을 한다.
정리하면, ‘말투가 어색한가’는 이제 믿을 만한 판별 기준이 아니다. 사람의 눈과 직관만으로 걸러내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공격에 AI가 쓰인다면 방어에도 AI를 쓸 수 있다. 수상한 문자나 메일을 받았을 때, 그 내용을 AI 챗봇에 붙여넣고 피싱 가능성과 근거를 분석해 달라고 요청하면 사람이 놓치기 쉬운 신호를 짚어준다. 급하게 행동하도록 몰아가는 문구, 발신자 주소와 사칭 대상의 불일치, 진짜처럼 보이게 철자를 살짝 바꾼 링크 도메인 같은 것이다.
받았을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순서는 이렇다.
AI 분석을 과신하면 오히려 위험하다.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형언어모델 기반 탐지기는 어느 정도 긴 문장이 있어야 작동해, 250자에 못 미치는 짧은 문자 사기에는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 한 연구에서는 이런 한계로 상당수 공격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AI가 썼는지 사람이 썼는지를 정확히 구분하는 도구도 아직 없고, 이메일을 보는 탐지기는 음성·문자·브라우저를 통한 사기에는 손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AI는 판정관이 아니라 ‘한 번 더 의심하게 만드는 보조 장치’로 쓰는 게 맞다. 어떤 메시지가 결국 안전한지 아닌지는, 메시지 바깥의 독립된 경로로 확인했을 때 비로소 갈린다. 예상하지 못한 링크는 누르지 않고, 거래소나 기관은 공식 앱·전화로 직접 접속하며, 의심스러운 건 신고한다. 공격자가 AI로 무장했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 원칙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급할수록, 그럴듯할수록 한 번 더 멈춰 서는 것이다.